미루지 않기

예전 회사 다니며 업무를 할 때는 쫓기는 느낌이 싫어 미리미리 일을 해 놓았다. 하지만 성격이 게을러 일상의 일들은 미루었다가 한꺼번에 하곤 했다. 몰아서 한번에 하는 것이 뭔가 일을 한 느낌도 들고, 하고 나면 기분이 더 좋았다. 하지만 그 생활 속 일들의 귀찮은 대부분의 것을 아내가 다 해놓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예전 이직 시의 빈 시간에 흔히 말하는 노가다를 하곤 했는데, 차라리 시멘트를 나르는게 살림하는 것 보다 편하다.

지금처럼 혼자 살며 살림까지 해야되는 상황이면, 이 미루다 한꺼번에 하는 습관은 매우 피곤해진다. 할 일이 생기면 그때 그때 바로 해결해 놓고 가는 것이 덜 피곤하다. 이틀 게을렀다가 하루 바쁜 것 보다, 그냥 계속 조금 귀찮은 게 덜 피곤하다. 살림은 할 게 정말 많다. 게다가 8개월도 되지 않았지만 대형견인 리트리버를 아직은 실내에서 키우다 보니 일은 배가된다. 아직 살림과 개를 키우는 것이 초보라 더 정신이 없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나 익숙해지고 요령이 생기면 나아질 것이라 믿는다.

경청

한문 교육 세대 답게 뜻 풀이를 하면, 傾(기울 경)에 聽(들을 청)이다. 한문은 검색해서 붙여 넣었지만, 귀 기울여 듣는 다는 뜻이다. 나이가 들어 가며 의식적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해볼려고 하지만, 그렇지 못한 성격과 습관 때문에 선입견과 입이 먼저 반응을 한다.

젊었을 때 부터 지금까지 나이 든 나의 모습에 대한 롤모델은 인자하고 온화한 표정의 노인들이었다. 이 분들은 찾기 힘들지만, 그나마 도서관과 같은 곳에서 볼 수가 있다. 약간의 노력을 해봤지만, 나는 이미 그런 인상과 어투를 갖기에 글렀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경험에 의한 지레짐작과 인내심, 호기심, 집중력 부족으로 점점 더 상대방 이야기를 흘려 듣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 같다.

우스개 소리로 나이가 들면 입을 닫고 지갑을 열라는 말이 있다. 입을 닫으라는 말은 어떤 의미인지 이해가 가는데, 호구도 아니고 지갑을 열라는 건 동의할 할 수 없지만. 입은 닫고 귀를 열려고 한다. 대화가 안될 것 같으면 회피를 하던지, 아니면 상대방 이야기에 집중을 해볼려고 한다.

늙어 간다는 것

나이가 들어 가는 것의 장점은 거의 없다. 마흔이 넘어 가며 새치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거울을 안보게된지 오래되어 새치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그러다 처음 나도 늙었구나 생각이 든 것은 바로 찾아온 노안이었다. 양쪽 시력이 2.0으로 눈에 대한 아무 불편 없이 살다가 천천히 가까운 글씨들이 흐릿해지며 돋보기 안경이 필요했다. 야외활동을 좋아하지만 자외선 차단제를 사용하지 않았는데, 나이가 드니 자외선의 공격을 회복하지 못하는 피부는 검버섯이 피게 되었다. 그리고 점점 더 상처가 아무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게 되었다. 티비에서 본 동물의 왕국의 노쇠한 동물들이 생의 끝으로 가는 길을 같이 걷는 느낌이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기에 아쉬움 없이 ‘나도 이제 저물어 가는 구나’란 생각만 들었다.

장점이 거의 없다고 했는데, 거의라는 것은 미미하게 장점도 있다는 뜻이다. 젊었을 때 보다 체력, 근력, 활력 모든 것이 약해지는 대신에 감정적으로 여유가 있고 차분해진 느낌이다. 삶이나 타인에 대해 큰 기대도 없어지고 무미무취해진다고나 할까? 운전을 할 때 예전에는 앞 차가 얍삭하게,또는 난폭하게 운전을 하면 마음이 불편했지만 이제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내 갈길만 간다.

세상은 내가 바라는 대로 되는 것이 운 좋은 몇개의 경우 빼고는 없다. 마음에 안맞으면 그냥 받아 들이는 거나, 할 수 있는 한 회피하는 것이 가장 수월한 방법이다.

운전

아들이 성장하며 친구들과 지내는 것을 더 선호하게 되면서 가족끼리 여행을 가는 것이 드문 일이 되었다. 그래서 이 지하철 잘 깔려있는 서울에서 차는 더이상 필요없다는 생각으로 처분했다. 그렇게 7, 8년 차가 없는 평안한 세월을 보내다 아버지가 돌아 가시기 전, 휠체어를 실고 병원에 가야할 일이 자주 있어 휠체어가 들어 가는 경차, 레이를 구입했다. 그 뒤 아버지가 돌아 가시고 이제 운전할 일이 없어져 레이도 거의 잠이 들었다.

그리고 작년에 상대적으로 대중교통이 열악한 남원으로 내려오면서 레이는 다시 부활했다. 개를 입양하기 전까지는 서울에 올 일이 있으면 KTX나 SRT를 이용했다. 그러나 입양하고 부터는 차량을 이용했다. 주관적인 관점으로 레이는 시티카 용도로는 최고의 차량이다. 경차지만 높은 전고로 답답하지 않은 실내와 많은 짐을 실을 수 있고, 주차하기도 편하고, 공용주차장과 고속도로 통행료에서 혜택도 있다. 레이의 또 하나의 매력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능력이다. “여기 좁아서 못지나가”, “아니 돼”, “여기 차 못대”, “아니 돼”. 마트 갈 때, 행정복지 센터 갈 때, 식당 갈 때, 산책 갈 때, 놀러 갈 때 등 시도때도 없이 레이를 몰고 나갔다.

하지만 고속도로 운행에서는 부족함이 나오는데, 바람이 강하게 불거나 큰차들이 옆으로 지나가면 흔들림이 있고, 전반적으로 안정성이 좋지 않다. 잘 달리는 차가 잘 서는데 레이는 이부분이 부족한다. 외양만 봐도 고속도로에서 달리라고 만든 차는 아니다. 물론 간혹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큰 문제가 없지만, 자주 타야 된다면 적합한 차는 아니다. 그래서 레이는 마침 차를 바꿀 때가 된 아랫동서에게 주고, 승용차 하나와 중고 포터를 구입했다.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어느 정도 충족이 가능한 SUV를 권했지만, 짧고 간접적인 시골생활이었지만 포터는 거의 필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종에 관계없이 남원에서의 운전은 서울에 비해 정말 쾌적하다. 차도 적고, 경관도 좋고, 창문 열면 들어오는 공기도 신선하다. 서울에서는 최소한으로 운전대를 잡았다면, 여기서는 최대한으로 운전대를 잡는다. 한마디로 드라이브가 즐겁다.

운전이 즐겁지만 이제 칠십까지 15년 남았다. 다니는 주행거리가 짧지 않으니 15년 있다 폐차하거나 처분하면서, 운전면허도 반납할려고 한다. 그럼 이 시골에서 어떻게 이동을 해야할지 조금 막막하긴 하다. 버스정류장은 있지만 버스를 본 적은 없다. 인구는 계속 줄고 그때면 노선이 없어질 것 같기도 하다.

요즘 차들의 크루즈 컨트롤 기술을 보면 그 때쯤이면 자율주행이 가능한 차들이 나오지 않을까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더 늘어난 고령인구가 많은 비율을 차지하면, 노인들을 위한 단순한 기능의 자율주행차가 나올 것 같다. 아니 나와야 한다.

시골에서 산다는 것

1년 조금 넘은 –마을에 산지는 2개월 채 안되는– 짧은 시골살이지만 지금까지 느낀 점을 이야기 해본다. 사실 우려스러운 부분은 각종 미디어를 통해 시골 살이, 전원 생활, 귀농/귀촌이 장점만 부각되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준비와 각오만 되어 있다면 기대를 충족하며 좋은 결정일 수 있다. 하지만 막연히 낭만과 운치 있는 시골생활만 기대하고 있다면 크게 낙담할 수 있고, 실제로 포기하고 다시 도시로 돌아 가는 분들도 많다.

귀농 교육을 받으며 귀농/귀촌 선배들에게 들은 가장 힘든 점은 이런저런 의미의 ‘텃세’다. 갑자기 타지역에서 이전해 기존 마을사람과 같은 대접을 받을 수 없다. 대부분 나이 드신 분들이지만 그분들의 아버지, 할아버지, 더욱 더 그 위 세대때 부터 같은 마을에서 알고 지낸 분들의 안으로는 들어 갈 수 없다. 이런 부분에 대한 기대는 생각지도 않고 다만 마을 구성원으로 여기서 오래 사신 분들과 잘 지내자라는 정도의 생각만 갖고 있던 나에게는 아직까지는 큰 어려움은 없다. 어려움이 없다고 하기에 좀 그런게 내 성격이 너무나 무디긴하다. 실제 이 부분은 객관적으로 어떻다 이야기 할 수 없다. 마을 자체는 좋은 평판이 있어도 당장 내 옆집에 안맞는 이웃이 있고, 마을의 원로, 이장, 부녀회장과 마찰이 있으면 힘들어 질 수도 있다. 나쁜 평판이 있어도 내가 자주 보는 사람들이 서로 마음이 맞으면 괜찮은 곳이다. 이런 부분이 감당이 안되면 외떨어진 곳에 전원주택을 짓고 생활반경을 멀리 할 수 있으나, 시골의 특성상 완전히 벗어 날 수는 없다.

또한 냄새, 곤충, 먼지등에 민감한 분들은 힘들다. 아무래도 이런 부분들은 여성분들이 더 민감하기에 나처럼 홀로 귀촌귀향 살이를 하는 홀아비들이 많다. 냄새가 나도 그냥 어느 집에서 텃밭에 거름 줬나 보다, 집안에 거미나 그리마가 지나가면 얘들은 이집의 수호신이다, 뱀을 보면 뱀인가 보다, 가로등도 없이 칠흑 같은 밤이 되면 어릴 때 처럼 별이 잘 보이네 라는 무덤덤한 마음이면 그리 어려움은 없다.

이외에 대중교통, 편의시설, 서비스, 각종 인프라등 도시에서 당연시 하던 것은 잊고 적응해야 한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다지만 생활방식, 습관등은 대도시와는 확연히 다른 부분이 많다. 도시에서 자랐지만 과거 한국사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옛날 사람인 나에게는 이질감이 크진 않다. 시골은 변화가 늦다. 뭐 도시도 지역과 분야에 따라 별반 다르지 않은 곳도 많다.

대부분 모든 것에는 장단점이 있다. 각각 개인별로 장점이 더 크게 다가오면 좋은 결정이고 단점이 더 크게 다가오면 오판이다. 단점만 열거 했지만 장점은 티비의 각종 지방, 시골 생활 소개 프로그램이나 유튜브를 보면 된다. 단점만 극복하면 장점만이 크게 다가온다. 개인적으로는 매우 만족하며 생활하고 있다.